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와 장연우, 황보유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는 김훈 최질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고려 조정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장연우와 황보유의는 2차 고려 거란 전쟁으로 재정이 여락해지자 무신의 영업전 회수를 건의하고 이 일로 유배 갑니다.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에서 김훈과 최질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고려의 모습이 계속되었습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은 1014년 11월부터 1015년 3월까지 약 4개월 간 이어진 고려 최초의 무신의 난입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고려 거란 전쟁 24회 줄거리-김은부 귀국 김훈 최질의 난 이자림 왕가도 사성정책(賜姓政策)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진은 원정황후를 겁박하여 교서를 내리게 합니다. 동북면과 서북면 군사들은 반란군을 진압하고 황제를 지키기 위해 개경으로 향하고 오던 중 교서를 받습니다. 서북면 군사들은 회군하여 돌아갑니다. 그러나 동북면의 군사를 이끌고 온 강감찬은 폐하의 명을 직접 받고 왔다며 개경으로 계속 진격합니다. 박진은 황후가 작성한 교서를 김훈에게 가져다줍니다. 김훈은 황후의 교서를 명분으로 현종을 지키던 무관들을 처단합니다. 최질은 대전에 들어가 문관들을 끌어냅니다. 그리고 동북면 군사들을 회군시키라 요구하였고 현종은 굽히지 않고 맞섭니다. 그러나 최질은 문관들을 인질 삼았습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문관들의 목을 베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현종은 문관들을 지키기 위해 동북면 군사들을 돌려보냅니다. 동북면 군사들은 반란군을 제압하지 못한 채 돌아섰고, 강감찬은 현종의 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궁에 들어갑니다.
강감찬은 궁에 재상들과 회의에 들어갑니다. 강감찬은 서북면 군사들이 오지 않는 것이 원정황후가 교서를 내렸기 때문이란 걸 알립니다. 재상들과 현종은 원정황후가 교서를 내렸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됩니다. 현종은 원정황후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물어봅니다. 원정황후는 협박받았다 울지만, 시작이 김 씨 부인을 투기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합니다.
지채문은 탈출하여 강감찬을 찾아갑니다. 강감찬은 지채문에게 김 씨 부인 행방이 묘연하다며 찾아서 지켜주라 합니다. 강감찬 부인은 지채문을 개경밖으로 피신시킵니다. 최질과 무관들은 현종에게 도를 넘는 요구를 계속합니다. 강감찬은 입바른 소리를 하지만 최질은 발길질로 강감찬을 응징합니다. 최질의 무례한 행동으로 김훈과 최질의 사이도 삐뚤어집니다. 김훈은 반역은 안된다 하였고, 반란군은 최질의 편에 서게 됩니다. 최질은 국가재정 및 조정을 움직이는 것들을 무관들이 할 수 있게 해 달라 요구합니다. 현종은 더 이상 문관들이 다치는 것을 걱정하여 윤허합니다. 무관들은 문관들의 녹봉을 주지 않았고 궁녀들을 희롱하며 도를 넘는 행동을 계속하였습니다.
현종은 황후와 황비, 김 씨 부인이 무사한지 알아보라고 명을 내립니다. 김 씨 부인과 김은부 가족이 없어진 것을 알고 황후를 찾습니다. 문관들은 모든 일이 김훈과 최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며 상황을 분석합니다. 역도들을 움직이는 머리가 박진이란 걸 알게 되고 최사위는 몽진길에 습격한 사람이 현종인 것 같다고 전합니다. 강감찬은 어깨에 화살 자국을 확인하고 황제를 시해하려던 대역죄인 박진을 추포 합니다.
장연우
장연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장연우는 고려 문신으로 장유의 아들입니다. 장유는 후백제 영주 출신으로 후삼국 시대에 오월국으로 피난을 갔었습니다. 고려의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웠을 때 장유는 고려에 돌아옵니다. 장유는 중국어에 능통하여 광종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장유는 예빈성에서 중국 사신을 대접하는 일을 전담한 인물이었습니다.
장연우는 2차 고려 거란 전쟁 때 현종 몽진을 호종합니다. 장연우는 당시 현종을 호종한 공으로 중추사가 되었습니다. 2차 고려 거란 전쟁 이후 고려 황실은 재정이 열악해집니다. 전쟁으로 인한 나라 재건과 군인 수를 늘려 국방비가 막대하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장연우는 1014년 무관의 영업전을 회수하여 문관의 녹봉을 주자고 건의합니다. 장연우는 황보유의 와 함께 유배 보내집니다. 1015년 김훈과 최질의 난을 진압한 후 장연우는 이후 호부상서가 되었지만, 그해 사망합니다. 상서우복야로 추증되었습니다.
장연우 출생일 - 사망일 : 출생일 알 수 없음 - 1015년 11월 23일
장연우 가문 : 흥덕장 씨
장연우 부친 : 장유
장연우 직책 : 병부시랑, 행영도통부사, 중추사, 판어사대사, 호부상서, 상서우복야 추증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에서 장연우는 스스로 김훈과 최질 앞에 나섭니다. 고려를 위해 반란군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고려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지만, 실제로 장연우는 매를 맞은 뒤 유배에 처해졌습니다. 장연우는 1015년 김훈과 최질의 난이 진압되자 유배가 풀렸고 호부상서에 임명되었지만 그해 사망하였습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고려 거란 전쟁 24회 줄거리-김은부 귀국 김훈 최질의 난 이자림 왕가도 사성정책(賜姓政策)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보유의
황보유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황보유의의 가문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울 때 공을 세운 공신 집안 황주 황보 씨의 후손으로 추정됩니다. 황보유의는 고려 건국 이후 딸을 시집보낸 황보제공의 일족으로 추정됩니다. 황보유의는 목종 때 선휘판관에 올랐고 대량원군을 신혈사란 절에서 개경으로 모셔오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황보유의가 대량원군을 데리고 개경에 왔을 때 목종은 시해되었고 대량원군은 고려 제8대 황제 현종이 되었습니다. 황보유의는 2차 고려 거란 전쟁 이후 중추원 일직원으로 있을 때 무관의 영업 전을 회수하여 문관의 녹봉을 줄 것을 건의합니다. 황보유의는 장연우와 함께 이 일을 건의하였고 김훈과 최질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일로 황보유의는 유배보내집니다. 황보유의는 1015년 김훈과 최질의 난이 진압되자 유배가 풀렸습니다. 황보유의는 급사중으로 다시 기용되었고 어사대부에 올랐습니다.
황보유의는 왕가도와 함께 개경의 나성을 쌓았습니다. 황보유의는 참지정사, 이부상서, 내사시랑, 내 사문하평장사, 판호부사, 문하시랑 등을 수행하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에서 황보유의는 장연우와 함께 난을 일으킨 김훈과 최질 앞에 나갑니다. 황보유의는 반란군을 자극하지 않고 황제를 지키기 위해 김훈과 최질 앞에 나섰던 것입니다. 고려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지만, 실제로 황보유의는 매를 맞은 뒤 유배에 처해졌습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고려 거란 전쟁 24회 줄거리-김은부 귀국 김훈 최질의 난 이자림 왕가도 사성정책(賜姓政策)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치며
오늘은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와 장연우, 황보유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 26회 줄거리는 김훈 최질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고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려는 2차 고려 거란 전쟁 이후 재정이 여락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연우와 황보유의는 무관의 영업전을 회수하여 문관의 녹봉을 지급하는 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김훈과 최질은 난을 일으켰고 장연우와 황보유의는 유배 보내집니다. 감사합니다.